중국발 천하대란, 시진핑의 몰락 시작됐나 [남문희의 코리아 체스판]
중국발 천하대란, 시진핑의 몰락 시작됐나 [남문희의 코리아 체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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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7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구이저우성 소수민족 마을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Xinhua
중국 군부 최고위층의 갑작스러운 낙마와 실종, 사망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중국에서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시진핑 국가주석의 권력은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 쌓이곤 한다. 그런데 최근의 중국발 상황 전개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번 호와 다음 호 두 차례에 걸쳐 중국발 천하대란의 실체를 짚어본다.
중국발 ‘천하대란’ 소식이 중화권 매체들을 달구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사실상 권력을 상실했으며 당과 군의 권력은 후진타오 전 총서기, 원자바개인사업자대출
오 전 총리 등 공산당 원로와 장유샤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 등 반대파 군부에게 장악됐다는 것이다. 최근 1~2년간 중국에서는 군 고위층의 갑작스러운 실종·낙마·사망 소식이 특별한 설명 없이 반복돼왔다. 처음 양상은 시진핑 주석이 주도하는 군부 내 반부패 투쟁의 일환인 것으로 보였지만, 지난해 중반부터는 친시진핑파 군부의 숙청 낙마 소식이 빈번해졌다.현대자동차 할부조건
지난해 11월28일 먀오화 중국 중앙군사위원 겸 정치공작부 주임이 기율 위반 혐의로 정직 상태에서 조사 중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시진핑 주석의 푸젠성 인맥인 ‘푸젠방(福建幇)’ 일원으로 중국군 인사를 총괄하는 사실상 시 주석의 군부 대리인이 낙마한 것이다. 올해 들어서는 중국군 서열 3위이자 먀공공임대신청
오화와 더불어 푸젠방의 일원인 허웨이둥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3월11일 전인대 직후 체포돼 조사를 받던 중 5월 초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먀오화에 이어 허웨이둥 체포 소식이 알려진 지난 3월까지만 해도 국내외 의견이 분분했다. 국내에서는 주로 ‘당에 의한 군 지배’라는 사sbi저축은행 광고모델
회주의 특유의 당·군 관계 관점에서 볼 때 시진핑에게 저항하는 군부 반란은 있을 수 없다는 시각이 강했다. 시진핑이 자신의 직계를 통해 군부 내 반부패 투쟁을 벌인 뒤 이들의 힘이 커지자 이들까지 정리함으로써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반면 해외의 중화권 전문가들은 중국 내부 소식을 인용해 반대파 군부에 의한 시진핑의 몰락이 시작됐다는 전세자금대출서류
다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7월의 3중전회(제20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를 계기로 칼자루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이미 군권을 상실했으며 이들과 손잡은 후진타오·원자바오 등 ‘1942년생 당 원로 3인’에 의해 당의 주도권까지 상실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시진핑 거취 논의한 중앙정치국 확개인회생자
대회의
5월 들어 이 중국발 ‘천하대란’의 실체를 뚜렷이 보여주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해외에 거주하는 복수의 중화권 전문가들이 일제히 전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비밀 확대회의 개최 사실이다.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지난 5월14일 공산당 중앙정치국은 기존 25인의 정치국 위원에 ‘공산당 원로, 퇴역 군 장성, 전직 신용보증기금 사업자대출
상무위원과 고위 간부들’까지 참여한 정치국 확대회의를 비밀리에 개최했다. 이들이 관례를 깨고 외부 원로들까지 참여하는 확대회의를 개최한 것은 이 회의의 안건이 바로 시진핑 주석의 거취와 관련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 시진핑의 거취를 둘러싸고 참석자들은 전면 퇴진이냐, 부분 퇴진이냐를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 결론은 일단 8월27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든든생활비대출
서 4중전회(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를 개최해 결론을 내기로 했다. 사실상 퇴진이라는 방향을 정한 가운데, 시진핑의 체면과 당의 위신을 고려해 점진적으로 퇴진시킬 것인지 아니면 전면 퇴진시킬 것인지가 주요 논점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됐든 시진핑 주석은 이미 ‘실권을 잃고 꼭두각시로 전락’했으며 시진핑이 축출된 이후 ‘공백이 된 권력을 놓고 암투가 격every 단수명사
화’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새로운 권력자의 출현과 관련해 이날 회의에서는 두 집단의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하나는 지난해 7월 이후 군부 내 친시진핑파인 푸젠성의 31집단군 출신 세력을 제거하는 데 앞장서온 반시진핑파 군부이다. 그 정점에 선 군 서열 2위 장유샤 당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소득 7분위 이하
의 이날 연설은 참석자들을 ‘충격에 빠뜨릴 정도로 폭발적’이었다고 한다. 군 내부 부패 혐의로 체포된 상장(대장)과 중장 명단을 30분에 걸쳐 낭독했는데 대부분 시진핑이 직접 발탁한 장성들이었다. 그의 발표대로라면 군내 시진핑 세력은 발붙일 곳이 없어져 시진핑이 더 이상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2024년 8월 장유샤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제1부주석(오른쪽)이 자국을 방문한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타이완 문제 등을 논의했다. ⓒEPA
정국 운영과 관련해 주목할 집단은 후진타오·원자바오 등의 당 원로와 그들로 대표되는 공청단파(공산주의청년단 계파)의 약진 가능성이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의 3연임을 확정 지은 2022년 10월의 20차 당대회 폐막식 도중에 강제로 끌려 나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로부터 약 2년6개월여 만에 시진핑의 거취를 결정할 회의의 좌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0년간 오직 단파(團派·공산주의청년단 계파)만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지켰다”라고 일갈하며 “오는 4중전회에서 차기 중앙정치국 위원에 공산주의청년단 계파(공청단파) 비중을 3분의 1로 확대”한다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후진타오는 전 총서기라는 상징성으로 정국 안정의 방파제 구실을 하고 실질적인 정국 운용은 원자바오 전 총리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시진핑 권력 이상의 징후들은 그동안 많았다. 다만 해석 방향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번 정치국 확대회의 소식은 해석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들어서만도 지난 3월15일 국가안전부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한무제(한나라의 7대 황제) 시기를 빗대 시진핑의 호전적 대외관계 노선을 비판하고, 지난 5월24일에는 시진핑 부친인 시중신의 23주기에 맞춰 개관한 기념관에 부친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일도 벌어졌다. 시 주석 스스로 건강을 이유로 은퇴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반면 당 인사권이 이미 공청단 쪽으로 넘어가는 일도 있었다. 3월31일 시진핑 주재 당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중국 공산당 인사를 책임지는 리간제(61) 중앙조직부장과 타이완 및 비(非)공산당 정파와 교류를 총괄하는 스타이펑(69) 중앙통일전선공작부장이 자리를 맞바꾸는 전례 없는 인사가 행해진 것이다. 이는 시진핑과 같은 칭화대 출신의 심복에서 베이징대 출신의 공청단파로 당 인사권이 넘어갔다는 것을 뜻한다. 공청단파의 전진 배치 움직임과 함께 ‘후진타오의 황태자에서 시진핑의 폐태자’로 전락했던 후춘화 현 중국 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의 활발한 행보는 당 권력의 향방과 관련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중국 공산당 권력의 설계자인 마오쩌둥의 유명한 금언이다. 오늘의 시점에 맞춰 풀이해보면 후진타오·원자바오로 대표되는 공청단파의 전진 배치 움직임에 앞서 장유샤를 중심으로 한 반시진핑파 군부에 의한 시진핑 직계 군부 제압이 선행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언급한 먀오화와 허웨이둥의 낙마이다. 국내에서는 이를 계기로 비로소 시진핑 권력의 향방에 관심을 가졌지만 중화권 내에서는 이미 반대파에 의한 군권 장악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간 것을 의미했다.
2022년 10월 후진타오 중국 전 국가주석이 공산당 당대회에서 퇴장당하고 있다. ⓒKyodo News
반시진핑파 군부의 반격이 시작된 시점은 대체로 지난해 즉 2024년 6월과 7월로 보고 있다. 6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17∼19일 산시성 옌안에서 10년 만에 중앙군사위 정치공작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반부패 투쟁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군의 ‘절대 충성’을 강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군의 절대 충성을 강조하며 군내 반부패 투쟁을 강조한 이 옌안 공작회의가 시진핑 권력이 크게 약해지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 1년 전인 2023년 6월 로켓군에 대한 대대적 숙청으로 시작된 시진핑의 반부패 투쟁 앞에 은인자중해온 장유샤 당 중앙군사위 제1부주석이 시진핑에게 맞서 칼을 뽑은 시점이 바로 이때인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뒤인 지난해 7월15~18일 개최된 제20기 3중전회는 장유샤의 반격에 당의 민심이 함께한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원래 중국 공산당 제20기 3중전회는 20기 당대회가 열린 2022년 10월로부터 1년 후인 2023년 10월에 개최하는 게 관례였다. 그동안 로켓군 숙청 등 군부를 겨냥한 반부패 투쟁 등으로 9개월 늦게 열린 이 회의는 옌안 정치공작회의에 이어 당내 분위기를 다잡으려는 시진핑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시진핑이 이대로 권력을 유지하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라는 위기감에 공감이 이루어졌고 이에 ‘1942년생 원로 3인’이 과도기적으로 정국을 운영하자고 의견이 수렴됐다. 1942년생 원로 3인은 후진타오 전 총서기, 원자바오 전 총리, 그리고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아들인 후더핑 전 통일전선부장 등이 거론된다.
전광석화로 이루어진 장유샤의 군권 장악
이 3중전회를 거치면서 시진핑 건강 이상설, 군 장악력 상실설, 당내 권력 약화설 등 소문이 중화권에 소용돌이쳤다. 특히 3중전회가 끝나고 8월 초 열린 공산당 전현직 고위층 내부 회의인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시진핑이 원로들의 질타를 받았다는 내용이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일본 〈닛케이 신문〉은 여러 관계자 증언을 종합해, 일부 당 원로들이 베이다이허 회의 전 여러 원로들의 의견을 취합해 시진핑에게 전달하면서 현재의 혼란상에 관한 강력한 직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은 회의석상에서 물러난 후 다른 자리에서 원로들의 지적에 대해 측근들에게 격한 분노를 터뜨렸다고 한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으니 총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원로들의 직언 따위는 2018년 베이다이허 회의 직후와 마찬가지로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장유샤의 총구가 움직인 것이다. 그의 총구는 크게 두 방향으로 움직였다. 하나는 중국의 5대 전구 중 중부전구, 북부전구, 남부전구 사령관을 자신의 측근 인물로 교체함으로써 이들 전구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었다. 이로써 북부전구와 중부전구의 방대한 중장철갑병단이 베이징을 포위하는 형세가 됐다. 올해 3월11일 막을 내린 제14기 양회(兩會·정협과 전인대) 3차 회의 직후 린샹양 동부전구 사령관이 제거됐고, 5월에는 서부전구 사령관인 왕하이장도 베이징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5대 전구의 사령관 교체가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동시에 자신의 세력으로 새로운 지휘부를 구성했다. 오랜 심복인 리차오밍 상장과 쉬더칭 상장을 중심으로 5대 전구의 군권을 주도하는 핵심 라인을 구축했다.
2015년 9월3일 중국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인민해방군 군인들이 행진하고 있다. ⓒEPA
군에 대한 시진핑의 주도권 상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지난해 9월의 천궈창 중앙군사위 기율검사위 전직부서기(專職副書記) 겸 감찰위원회 부주임의 전보 발령과 11월의 먀오화 낙마다. 천궈창은 군대 내 기율검사와 부패 척결을 담당하는 중요 보직에 있으면서 먀오화의 지시에 따라 2023년 6월부터 로켓군 및 장유샤 라인의 리상푸 국방부장 등에 대한 반부패 숙청을 주도해왔다. 지난해 9월29일 인터넷 신문 차이신왕(재신망) 보도에 따르면, 그런 인물이 국방과기대학에 새로운 정위(政委)로 부임해 신입생 선발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고 한다. 군부를 겨냥했던 시진핑의 칼이 날아간 것이다.
두 번째는 앞에서 언급한 지난해 11월의 먀오화 중국 중앙군사위원 겸 정치공작부 주임의 기율 위반과 조사 건이다. 놀라운 사실은, 먀오화가 구금된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그동안 시진핑이 임명한 인물들을 포함해 1300명 이상의 군 인사 관련 정보를 자백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장군도 100여 명 들어 있었다고 한다. 시진핑은 먀오화의 폭로에 ‘머리카락이 하룻밤 사이에 회색으로 변할 정도’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먀오화의 자백은 장유샤의 시진핑 군맥 정리에 결정적 자료가 됐다. 이를 통해 첫째, 시진핑의 군대 내 직계세력을 적발해 무너뜨릴 수 있었다. 시진핑은 1985년부터 2002년까지 푸젠에서 17년간 재직하면서 푸젠 주둔 제31군과 밀접했다. 허웨이둥과 먀오화가 모두 31집단군 출신이다. 군내 31군 출신의 와해는 차이치, 허리펑, 왕샤오훙을 대표로 하는 당정 푸젠방의 군대 내 뒷배경의 상실을 뜻한다.
둘째는 해군 장군의 숙청이다. 이는 먀오화가 2014년 12월 군종을 넘어 해군정위가 된 이래 심어둔 인맥들이다. 현임 국방부장 둥쥔, 해군사령관 후중밍, 해군정위 위안화즈, 로켓군사령관 왕허우빈이 바로 그들이다. 셋째는 군대 내 정치공작 라인의 숙청이다. 먀오화가 바로 현재 이 분야 1인자로 해군의 친성샹·위안화즈, 육군 친수퉁이 바로 그 계통이다. 앞에서 언급한 천궈창 역시 먀오화가 발탁한 인물이다.
넷째는 ‘대해방(臺海幇)’ 장군들에 대한 숙청이다. 특히 대해방의 숙청은 앞으로 타이완 정책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도 주목된다. 시진핑 3연임 후 타이완에 대한 군사적 야심이 노골화하면서 중앙군사위 내에서 ‘대해방’이 ‘월전방(越戰幇)’이 주도하는 중앙군사위를 대체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현재 당 중앙군사위원 중 장유샤 부주석과 류전리 군사위원은 모두 베트남전쟁 참여 경험이 있어서 ‘월전방’이라고 한다. 허웨이둥 부주석과 군사위원 먀오화는 타이완을 마주보고 있는 동부전구에서 오래 근무해 ‘대해방’이라 한다. 2023년 6월 로켓군 사건 이후 월전방의 장 부주석이 수세에 몰렸으나 상황이 역전됐다
다섯째, 둥쥔 현 국방부장처럼 ‘러시아 유학파’ 장군들이 코너에 몰렸다. 그리고 여섯째, 시진핑의 대비(大秘)가 실종되었다. 대비는 비서실장으로 시진핑의 분신이자 보이지 않는 실세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시진핑의 중앙군사위 대비 중사오쥔은 먀오화와 함께 시진핑의 군대 내 가장 중요한 양대 심복 중 한 사람이다.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문만 들릴 뿐 행적이 묘연하다. 이 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긴 것만으로도 시진핑이 군 통제권을 상실했다는 징표다. 이상 6가지 사항이, 중화권 전문가가 시진핑이 군 통제권을 이미 상실했다고 보는 근거들이다.
남문희 편집위원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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